12월 3일이 만든 두 개의 한국

IMF 위기는 한국 사회에 두 개의 분기점을 남겼다. 하나는 제도 — 외환·금융 감독 체계의 전면 개편, 부실기업 정리, BIS 비율 도입. 다른 하나는 정서 — "다시는 외환위기 같은 일을 겪어선 안 된다"는 집단 트라우마. 전자는 한국 경제를 21세기에 견딜 만한 구조로 바꿨다. 후자는 종종 의사결정의 발목을 잡았다.

예컨대 2008·2020·2022년 위기 때마다 정부와 한은은 1997년의 그림자 위에서 결정했다. 그때그때 옳은 결정이었지만, "다시는"이라는 강박이 새 위험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 면도 있다.

닮은 그림자, 다른 위협

오늘의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협은 외환 부족이 아니다. 외환보유액 4,500억 달러는 충분하다. 진짜 위협은 다른 곳에 있다 — 인구 감소, 산업 구조의 경직성, 자영업 부채, 지방 소멸, 기술 패권 경쟁. 이들은 모두 "1997년형" 위기와 결이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가 위기를 말할 때마다 IMF의 어휘를 끌어쓴다. "구조조정", "구제금융", "외환방어선" 같은 말은 1997년의 위기를 통과한 세대의 언어다. 새 시대의 위기를 1997년의 어휘로 말하는 한, 우리는 매번 잘못된 약을 처방할 위험이 있다.

트라우마와 학습 사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위기의 모양이 아니라 위기를 다루는 방법이다. 1997년 한국 사회는 빠르게 학습했고 — 동시에 천천히 잊었어야 할 것을 잊지 못했다. 행간이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의 위협 앞에서 우리는 1997년이라는 거울을 들고 다시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가? 거울은 과거를 비추되 미래를 가리지 않을 때만 유용하다.

거울이 너무 가까우면 우리는 거울 속의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한다. 역사는 그렇게 봐야 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