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면, 다른 무대

1973년 10월 17일, OPEC 6개국 석유장관은 쿠웨이트 회동에서 원유 가격을 70% 인상하고 친(親)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금수조치를 발표했다. 한 달 후 미국 휘발유 가격은 두 배가 됐고, 일본은 화장지 사재기로 사회가 마비됐다. 한국은 GDP 성장률이 14.9%(1973)에서 8.2%(1974), 6.6%(1975)로 급락했다.

2026년 4월, 호르무즈 해협 일시 봉쇄설이 흘러나오자 브렌트유는 하루 만에 +6.3%, 한국 휘발유 도매가는 일주일에 +9.4% 급등했다. 1973년의 트라우마를 가진 세대에게 이 장면은 "53년 만에 다시 본 무대"였다.

닮은 점이 가리는 차이

에너지 가격 충격, 외교적 도구로서의 원유, 정부의 비축유 방출 — 표면은 닮았다. 그러나 두 시점은 적어도 다섯 가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첫째, 한국의 에너지 자립률은 1973년 0%에서 2026년 18.7%(원전·재생에너지 합산)로 늘었다. 둘째, 산업의 에너지 집약도는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셋째, 전략비축유는 90일분을 확보하고 있다. 넷째, 위안화·루피·원화의 결제 비중이 늘면서 페트로달러 의존이 약해졌다. 다섯째, 정보 비대칭이 줄었다 — 1973년의 사재기를 만든 "공급이 끊긴다"는 소문은, 2026년에는 30분 만에 사실관계가 가려진다.

닮음을 보는 눈은 쉽고, 차이를 보는 눈은 어렵다. 우리가 정말 위험한 것은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단정 그 자체일지 모른다.

반복되지 않는 역사를 위한 질문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운율을 가진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hyme). 마크 트웨인의 이 문장은 패턴 인식의 함정을 가장 짧게 요약한다. 우리가 1973년에서 배워야 할 것은 "유가가 오르면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라 "위기 앞에서 제도와 사람은 어떻게 변했는가"이다.

행간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다르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53년 동안 우리가 진짜로 학습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정부의 비축 데이터에도, 시장 가격에도 없다. 답은 우리가 공포를 다루는 방식 안에 있다.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그것을 견디는 사회는 같지 않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가격이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