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의 약속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빵집은 매일 새벽 4시에 문을 연다. 사장 이모(67)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빵을 굽는 게 아니라, 어제 굽다 남은 반죽을 정리하는 일이다. "버리는 일이 가장 어려워. 그래서 매일 정확히 굽으려고 해."
하루 200개의 빵을 굽는다. 이 중 절반은 손님들에게 팔리고, 나머지 절반은 매일 오후 4시 30분에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나간다. 33년째다. 이 일을 시작한 1993년에는 손자 같은 노인 세 분이 단골이었다. 지금은 매일 30-40명이 빵을 받으러 온다.
"오병이어"라는 단어
사장님은 자신이 하는 일을 "오병이어"라고 부른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성경의 이야기.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내가 굽는 만큼 나누는 거지. 200개를 굽는데, 100개를 나눠도 100개가 남잖아요."
간단한 산수처럼 들리지만 33년 동안 그 산수를 매일 지키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임대료가 두 번 올랐고, 밀가루 값이 네 번 뛰었고, 전기료는 매년 올랐다. 그래도 "100개를 나누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동네라는 보호망
빵집을 33년 지킨 것은 사장님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다. 동네가 함께 지켰다. 2008년 임대료 인상으로 가게가 어려워졌을 때,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독 제도"를 만들었다.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빵을 받는 사람이 80가구가 됐다.
"내가 베푸는 게 아니라, 동네가 같이 베푸는 거예요. 나는 그저 빵을 굽고 있을 뿐." 사장님의 말이다. 동료의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정확히 어울리는 자리는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이런 동네의 작은 약속들이다.
베푸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다. 베푸는 일을 33년 동안 매일 지키는 일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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