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최정민 칼럼] 노년의 지혜 — 87세 철학자가 청년에게

"빠른 답을 가진 시대에 늦은 질문을 던지는 일의 가치"

최정민 · 2026.04.15 11:05 · 조회 4,970
한 87세 철학자와의 대담. AI가 답을 즉시 만들어내는 시대에 노년의 자리, 늦은 질문의 가치, 그리고 청년 세대에게 전하는 한마디.

늦은 답이 만드는 깊이

대담은 서울 종로의 작은 서재에서 이뤄졌다. 87세 철학자는 자신의 인생을 "늦게 답한 인생"이라 표현했다. "20대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60대에 알게 됐어요. 그런데 60대에 알게 된 것이 20대의 답보다 깊었어요. 늦은 답은 늦었기 때문에 깊은 면이 있어요."

AI가 답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시대에 늦은 답은 비효율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깊이는 종종 시간을 필요로 한다. 87년의 시간을 통과한 답은 5초 만에 만들어진 답이 줄 수 없는 무게를 가진다.

노년의 자리

한국 사회에서 노년은 종종 비용으로 다뤄진다. 의료비, 연금, 돌봄. 그러나 그 사회는 노년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잊고 있다. 87년의 시간을 통과한 한 사람의 사유는 어떤 데이터셋에도 들어 있지 않은 자원이다.

"내가 청년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에요." 그의 말이다. "내가 이 나이가 돼서야 하게 된 질문들이 있어요. 그 질문을 청년에게 전하고 싶어요. 청년이 그 질문을 빨리 만나면, 그들의 답이 더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내가 행복한가" 보다 "내가 충만한가"

청년 세대가 자주 묻는 질문은 "내가 행복한가"다. 그러나 그가 청년에게 권한 질문은 다르다. "내가 충만한가." 행복은 순간이지만, 충만함은 자세다.

"행복은 좋고 나쁨의 산수예요. 충만함은 깊이의 문제예요. 행복하지 않아도 충만할 수 있어요. 충만하지 않으면 행복도 곧 빠져나가요. 청년 세대가 행복 대신 충만함을 묻기 시작하면, 그들의 인생이 달라질 거예요." 87년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의 한마디다.

"행간"이 이 대담을 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빠른 답이 매일 쏟아지는 시대에 늦은 답을 만난 한 사람의 시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청년이 묻는 행복보다, 노년이 답하는 충만함이 더 깊은 이유.
© 2026 행간 · 전체 페이지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