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여성주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비워야 할 것
"동등(equality)"은 여성주의가 100년 동안 싸워 얻은 단어다. 투표권, 노동권, 교육권 — 모두 동등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옳다. 그러나 동등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동등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권리를 주는 것이지만, 같은 자리가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같은 직장의 같은 직급이 같은 조건이 아닐 수 있다. 동등의 언어로는 그 비대칭이 안 보인다.
동행은 함께 걷는 일이다. 같은 보폭이 아닐 수 있다. 같은 짐을 진 게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방향을 보고, 서로 자리를 비워주며, 함께 가는 일. 동등이 권리의 언어라면, 동행은 관계의 언어다.
한국의 여성주의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동등에서 동행으로 가는 어휘 전환이다. "당연한 권리"의 언어를 넘어서 "관계 안의 책임"의 언어를 만드는 일. 이것은 양보가 아니라 진화다.
동행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 첫째, "내가 옳다"는 확신을 잠깐 비워야 한다. 둘째, "상대가 틀렸다"는 단정을 잠깐 비워야 한다. 셋째, "동등이 곧 같음이다"는 등식을 비워야 한다.
동행은 같음이 아니라 다름의 인정이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같이 걷는 일. 그것은 여성주의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 시대 모든 사회 갈등에 필요한 윤리다.
"행간"이 동행의 윤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번 더 큰 분노를 동원해 왔다. 그러나 분노는 자체로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분노 다음에 동행이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 분열한 사회로 갈 뿐이다.
동등은 권리의 끝이지만, 동행은 관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