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지하철 7호선의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그 동료들

한 안내견 사용자와 32명의 동료가 만든 출퇴근 약속

차은영 · 2026.04.16 16:31 · 조회 6,849
서울 지하철 7호선에는 매일 같은 시간 만나는 한 시각장애인과 32명의 일반 승객이 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조용한 동행을 이어왔다.

같은 칸, 같은 시간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에서 7시 18분에 타는 열차의 4-3번 칸. 매일 그 칸에는 시각장애인 김 모(42)씨와 안내견 태풍이가 탄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만, 김씨가 타는 자리는 비어 있다. 우연이 아니다.

32명의 같은 시간대 승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약속이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자리를 비워두었고, 그게 어느 순간 32명의 약속이 됐다. 5년째다.

말하지 않는 동행

32명의 승객 중 김씨와 직접 인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리를 양보한다는 거창한 행위도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 김씨가 익숙하게 그 자리에 앉고, 태풍이는 발 밑에 엎드린다. 강남구청역에서 환승할 때 누군가 짧게 "다음 정거장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짧은 한마디.

이것이 32명의 동행 방식이다. 도와주지 않고, 시혜하지 않고, 그저 자리를 비워두는 일. 김씨도 감사하다고 일일이 인사하지 않는다. 서로의 출근을 그저 같이 하는 것뿐이다.

동행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한 청취자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 이야기를 제보하면서 알려졌다. "도와준 게 아니에요. 그저 자리를 안 차지한 거예요." 제보자의 말이다. 도움이 아니라 함께 있음. 김씨도 인터뷰에서 같은 말을 했다. "도움받지 않고 출근할 수 있는 자리예요. 그게 가장 큰 도움이에요."

"행간"이 정의하는 동료의식은 화려한 자선이 아니다. 자리를 비워두는 일, 같이 출근해주는 일, 한마디 짧게 알려주는 일. 36.5도의 일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도와주는 일보다 자리를 비워두는 일이 더 어렵다. 그래서 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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